농옥과 소사: 신선의 결혼
중국의 5천 년 문명에는 신비로운 일면이 있는데, 이는 바로 도(道)를 찾아 수련하여 영생을 얻고 하늘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신성한 존재가 되는 문화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수많은 관습, 표현, 이야기들이 이 문화에 심오한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어떤 사람이 진나라 무공(穆公, 재위 기원전 705-621년)에게 옥이 들어 있는 돌조각을 선물했습니다. 돌을 깎아 보니 녹색 빛깔의 흠잡을 데 없는 옥이 드러났고, 무공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마침, 무공의 어린 딸이 곧 한 살이 되었기에 전통에 따라 아기의 성격을 알아볼 수 있는 돌잡이 상(抓周)을 받았습니다. 무공은 그 아름다운 옥을 여러 가지 물건과 함께 쟁반에 놨습니다. 딸은 쟁반 위의 음식과 장난감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청옥을 집어 들고 매우 흥미롭게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리하여 무공은 딸의 이름을 '옥을 가지고 논다'는 뜻의 농옥(弄玉)이라 지었습니다. 농옥은 자라면서 용모가 매우 아름답고 지혜가 뛰어났으며, 특히 중국의 관악기인 생(笙) 연주에 능했습니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녀가 아무런 가르침 없이도 스스로 생 연주를 통달하여 아름다운 곡조를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이에 무공은 솜씨 좋은 장인들에게 명하여, 농옥이 가장 아끼는 그 옥을 깎아 옥으로 만든 생, 즉 옥생(玉笙)을 만들게 했습니다. 농옥이 그 옥생을 연주하자, 아름다운 그 소리는 마치 봉황의 울음소리 같았습니다. 무공은 딸을 더욱 아껴 딸의 거처에 '봉황루(鳳凰樓)'라는 누각을 지어주고, 그 앞에는 '봉황대(鳳凰臺)'를 세웠습니다.
농옥이 열다섯 살이 되자, 무공은 농옥에게 어울리는 남편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농옥은 아버지가 추천하는 귀족 청년들에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생을 잘 연주해서 자기와 함께 연주할 수 있는 남편을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무공이 사람들을 보내 사방으로 찾아봤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농옥이 봉황루 창가에 앉아 맑은 하늘과 밝은 달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묘한 기분이 들어, 창가에 향을 피우고 청옥 생(生)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생의 맑은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지자 갑자기 음악에 반응하는 소리가 메아리치는 듯했습니다. 농옥이 깜짝 놀라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소리는 그치고, 잔잔한 여운만 남았습니다.
그날 밤, 농옥은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잘생긴 남자가 하늘에서 화려한 봉황을 타고 내려와 봉황대 위에 앉았고, 허리에서 붉은 옥피리를 꺼내 연주했습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자,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습니다. 화산(華山)의 군주라고 소개한 이 남자는 자신이 농옥과 인연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농옥은 꿈에서 본 것을 아버지께 이야기했습니다. 무공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사랑하는 딸의 말이었기에 화산으로 사람을 보내 그 남자를 찾았습니다. 사신은 화산 명성암 근처에서 농옥이 말했던 옥처럼 빛나는 비범한 용모의 한 남자를 찾아냈습니다. 사신은 그와 인사를 나누며 이름이 소사(萧史)임을 알게 되었고, 무공을 만나러 가자고 정중히 권했습니다.
무공은 소사의 비범한 모습에 흡족해하며 그에게 옥피리를 불어달라고 청했습니다. 소사가 곡을 연주하자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었습니다. 두 번째 곡이 끝나자, 사방에서 형형색색의 구름이 궁궐 위 하늘에 모여들었습니다. 세 번째 곡을 마치자, 백학과 공작 한 쌍이 하늘을 날고 있었고, 그 주변의 새들이 함께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무공은 기뻐했고, 커튼 뒤의 농옥은 그가 꿈에 그리던 남편이라는 사실에 행복해 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무공은 소사에게 생과 피리의 유래에 관해 물었습니다. 생은 여와(여호와, 인간을 창조한 여신)가 만든 것으로, 만물의 발생을 상징하고, 피리는 복희(불과 음악 등 여러 가지를 발명한 전설 속의 왕)가 만든 것으로, 정화를 상징한다고 소사가 말했습니다. 또한 이 두 악기가 고대부터 이어져 온 발전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무공은 농옥과 소사를 약혼시켰고, 두 사람은 봉황루에서 지냈습니다. 결혼 후 사람들은 소사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았고, 가끔 술을 조금씩 마셨을 뿐입니다. 또한 그는 농옥에게 기를 인도하는 법을 알려주었고, 농옥은 점차 곡식을 먹지 않게 됐습니다. 두 사람은 생과 피리를 함께 연주했고, 그들의 음악은 세속을 초월했습니다.
약 반년 후, 부부가 봉황대에 있을 때, 갑자기 봉황루 오른쪽에 붉은 용이 나타나고 왼쪽에 자색 봉황이 내려앉았습니다. 소사가 농옥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원래는 하늘에서 온 신선이고, 인간 세상의 역사 기록을 정리하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110년이 넘었습니다. 하늘은 나를 화산의 주인으로 임명했고, 당신과 나는 인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당신의 생 소리에 응답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 세상에 너무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용과 봉황이 우리를 하늘로 데려가려고 왔습니다.“
농옥이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소사가 말했습니다. "이제 신선이 되었으니 인간 세상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어찌 가족을 그리워하겠습니까?“
그렇게 소사는 용을, 농옥은 봉황을 탔습니다. 그들은 봉황루에서 멀리 날아오르며 하늘에 구름을 남겼습니다. 그날 밤, 화산 사람들은 봉황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궁궐 시종들이 황급히 무공에 보고했습니다. 무공은 한동안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신선이 정말 존재하는구나. 만약 지금 용과 봉황이 나를 데리러 온다면, 나는 낡은 신발을 벗어던지듯 왕좌를 버릴 것이다.“
무공이 화산으로 사람을 보내 그들을 찾으려 했지만, 그들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사가 처음 모습을 보였던 명성암에 사당을 세우도록 명했는데, 그곳을 소녀사(簫女祠)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당에서 종종 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소사와 농옥이 용과 봉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에 감탄하며, 용과 봉황을 결혼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데 현세의 남녀에게 진정한 운명은 애정이나 영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자신으로 돌아가 결국 함께 천상으로 돌아가겠다는 위대한 맹세를 잊지 않도록 서로 상기시키고 격려하는 것임을 일깨우는 듯합니다.